광복 이후, 그리고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마취과’라는 독립된 전문분야가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외과의사들이 직접 마취를 시행했습니다. 프로카인(procaine)을 이용한 국소마취나 척추마취가 주로 쓰였고, 디에틸 에테르(diethyl ether)를 떨어뜨려 사용하는 개방점적식 마취도 흔했습니다. 하지만 클로로포름(chloroform)은 거의 쓰이지 않았고, 기관내 삽관이나 아산화질소(N₂O) 마취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948년 들어 미국에서 티오펜탈(thiopental, Pentothal)이 도입되면서 정맥마취의 문이 열렸습니다. 의과대학에서도 마취 교육은 외과학 강의 중 한두 시간 정도로 짧게 다뤄졌습니다.
한국전쟁은 마취의 중요성을 일깨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빠르고 안전한 마취가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부산항에는 덴마크 병원선이, 포천에는 노르웨이 이동병원이 있었고, 이곳에서 외국 의사들이 한국 의료진과 함께 일하며 마취를 가르쳤습니다. 1951년에는 육군의 윤치왕(尹致旺) 준장과 손의석(孫宜錫) 소령이 영국군의 Palmar 대위를 초빙해 단기 마취 교육을 열었고, 그중 정운혁(鄭雲赫) 대위와 윤주덕(尹周悳) 소령은 6개월간 집중 교육을 받았습니다.
1952년엔 스웨덴 적십자병원의 Ingrid Norden 박사가 부산에서 마취 교육을 실시했고, 같은 해부터는 미군과 협력해 군의관들을 미국으로 보내 본격적인 마취 연수를 받게 했습니다.
그중 신정순(辛正順) 선생은 스웨덴 적십자병원에서 훈련을 받고 한국 최초의 마취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이후 정운혁, 김기술(金琪述), 백광우(白光宇) 등 여러 군의관들이 차례로 미국에서 수련을 받으며 새로운 기술을 국내에 전파했습니다.
그 무렵 홍순창(洪淳昌) 선생과 미극동마취과학회 총무 (美極東麻醉科學會 總務) V.A. Traina 박사는 한국의 젊은 마취 의사들에게 세계마취과학회 창립 소식을 전하며, 극동마취과학회 설립에 함께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이 만남이 훗날 학회 창립의 중요한 씨앗이 됩니다.
| 민간부문 마취 | 군 부문 마취 |
|---|---|
| 1950년 부산항 덴마크 병원선(Dr. Ole Secher), 포천 노르웨이 이동병원(Dr. Bjorn Heger) | 1951년 육군의무감 윤치왕 준장과 육군의무감실 기획과장 손의석 소령은 영국후송중대(British Ambulance Co.)의 인도마취 군의관 Palmar 대위를 초빙하여 정운혁 대위 등 군의관 28명에게 단기 교육 시행 |
| 1952년 부산상고 교사에서 스웨덴 적십자병원(Dr. Ingrid Norden) | 1952년부터 미군과의 협력으로 육군, 해군에서 군의관들을 미국으로 파견하여 마취 교육 진행 |
| 신정순 선생이 스웨덴 적십자병원에서 마취 교육을 받아 한국 최초의 마취전문의사 취득 | 1차 장교단 (귀국 후 3명의 군의관에게 마취 교육 3회 시행): 정운혁 대위, 윤주덕 소령 (6개월 교육) |
| 1954년 수산대학교 이전시 Heino Meritz 가 교대로 진료하며 철수 | 해군: 미해군 병원선(U.S.S Repose호)에 군의관을 파견 Zimmerman대령의 주선으로 1-3개월간의 견학과정과 병행하여 1년간의 마취 교육 실시 김인현(金仁顯)소령(1953년, California, Oakland Naval Hospital), 오흥근(吳興根) 군의관(1954년, Bethesda, National Naval Medical Center) |
| 미국 파견 장교 육군: 김기술, 백광우, 곽일룡(郭一龍) (1955), 진상호(陳相浩) 해군: 이석희(李石熙,1955년), 김인철(金寅徹, 1956년), 조용준(趙容俊) 소령, 전세웅(全世雄) 소령 |
|
| 마산 수도육군병원 흉부외과, 춘천 제121 후송병원 신경외과 센터를 두고 산부인과출신의 황태식(黃泰植), 박문원(朴文遠) 군의관 등이 각각 배속되어 마취를 담당 및 교육 | |
| V.A.Traina(U.S.Air Force) 및 홍순창 선생 극동마취과학회 창립에 참여할 것을 권유함 |
1956년 9월 15일, 김완식 선생을 중심으로 뜻있는 의사들이 모여 대한마취학회 창립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함께한 분들은 정구충(鄭求忠), 김성진(金晟鎭), 민광식(閔珖植), 김명학(金明學), 이주걸(李柱傑), 홍필훈(洪弼勳), 이찬범(李燦范), 최성장(崔性章), 김형익(金衡翼), 김동길(金東吉), 한격부(韓格富) 선생 등 여러 분이었습니다.
그해 11월 10일, 서울역 앞 옛 세브란스병원 치과 강당에서 대한마취과학회 창립총회가 열렸습니다. 초대 회장은 민광식(閔珖植) 교수, 부회장은 김인현 중령, 총무는 김완식 선생이 맡았습니다. 약 30명의 외과의사, 군의관, 민간 의사들이 함께했고, 명예회원으로 Traina 박사와 홍순창 선생이 위촉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957년, 학회는 대한의사협회 분과학회로 공식 인정받았고, 1959년부터는 서울의 여러 대학병원 의사들이 모여 월례 학술집담회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학문으로서 마취학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1956년 11월 10일, 대한마취과학회 창립 총회 개최. 1956년 11월10일 오후 2시 서울역 앞 옛 세브란스병원 치과강당
초대 회장 및 2대 회장: 민광식 교수
3, 4대 회장: 유승헌(劉承憲) 선생
5대 회장: 정운혁 교수
부회장: 김인현 중령
총무: 김완식 선생 (이후 7년간 총무직 수행)
민광식 교수, 홍필훈 교수, 박윤식(朴潤植) 교수와 그 밖에 외과 중진들, 육군의 정운혁, 김완식, 김기술, 해군의 김인현 중령과 오흥근 소령, 이석희 그리고 민간관계 의사 등 약 30명 정도가 참석
명예회원: Dr. Traina와 홍순창선생 위촉
1956년, 대한의사협회의 분과학회로 등록됨.
1957년, 대한의사협회 분과학회 인정
1959년, 서울 시내 대학병원 및 종합병원 마취과 의사들이 모여 월례 학술 집담회 시작
1958년 설립된 국립의료원에는 덴마크의 Ole Secher 박사와 Bjorn Heger 박사가 초대 마취과장으로 임명되어, 마취과가 처음으로 병원의 독립 진료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가톨릭의대 등 여러 대학에서 마취과가 잇따라 신설되었고, 지방에서도 전남대·경북대·부산대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외국에서 연수를 받은 의사들이 돌아와 전국 각지에 마취과를 세우고 후배들을 교육했습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주관한 덴마크 코펜하겐 마취의사 연수교육에 10명 이상의 한국 마취의사가 매년 한 사람씩 참여함으로써 유럽의 마취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종윤 (李鍾倫), 진병호(秦柄鎬), 신웅호(申雄浩), 박주병(朴柱秉), 민광식, 윤덕선(尹德善), 홍필훈, 김기전(金紀典), 송전무(宋全武) 등 여러 선생의 참여가 학회의 진용을 강화하고 공헌하셨습니다.
학회의 지역 지부도 생겨났습니다. 1961년 영남지부 학회(초대지부장; 이석희), 1965년 호남지부 학회(초대회장; 하인호) 창설되었습니다. 1972년 영남지부가 경북지부(초대 지부장; 김병권)와 경남지부(초대지부장; 이석희)로 세분화 되었습니다.
| 연세대학교 [김완식; 1956, 오흥근; 1957, 박광원(朴光遠); 1962] |
서울적십자병원 [정운혁; 1957] |
서울대학교 [이동식(李東植);1957] |
경북대학교 [김인현;1957] |
가톨릭의대 [정운혁, 1960] |
| 이화여자대학교 [유승헌] |
대구 동산병원 [김인현, 1958] |
전남대학교 [곽일룡, 하인호(河仁鎬);1961] |
국립의료원 [신정순; 1958] |
한일병원 [곽일룡; 1962] |
| 우석대학교 [김인철; 1958] |
부산침례병원 [진상호; 1960] |
부산대학교 [신정순; 1957, 이석희; 1965] |
조선대학교 [손익종; 1971] |
서울시립중부병원 [이상신(李相信)] |
| 철도병원 [전하용(全夏鏞); 1966] |
백병원 [김석규(金錫奎)] |
경찰병원 [전용주(田溶周), 서병태(徐炳台)] |
도립충남의료원 [최세진(崔世鎭)] |
성심병원 [조형상(趙瀅相)] |
| 성분도병원 [배완수(裵完洙); 1969] |
부산시립병원 [이용우(李用雨); 1968] |
고려병원 [김성열(金晟烈); 1968] |
인천도립병원 [김종래(金鍾來); 1967] |
부산메리놀병원 [황한호(黃漢鎬); 1968] |
| 전주예수병원 [신태석(申泰碩)] |
1957년 서울대의 J.H. Matthews 교수가 대한마취학회의 세계마취과학회(WFSA) 가입을 도왔습니다. 이후 많은 의사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국내에 새로운 기술과 교육을 확산시켰습니다.
이 시기를 거치며 한국 현대 마취학은 확고히 자리 잡았고, 전문의 수도 빠르게 늘었습니다. 마취통증의학회는 이제 국내를 넘어 세계와 함께 발전하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