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약근절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의료용 마약류 처방이력 조회 의무화에 대해 의료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마취통증의학회는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사실상의 반대의견을 전달했다. “마취와 수술 후 급성기 통증 관리 시에는 처방이력이 어떻든 마약류 투입이 불가피하다”면서다. 정부는 전날 마약대책을 발표하면서 의료용 마약류 처방 시 환자의 과거 투약이력 조회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기로 했다. 임채성 대한마취통증의학회 법제이사는 “응급한 상황에서는 환자 투약이력 조회를 할 시간이 없을뿐더러 투약내역이 있더라도 의료용 마약류가 아닌 다른 약물로 대체하기도 어렵다”며 “내주 식약처를 만나 소상히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식약처는 2021년 3월부터 ‘마약류 의료쇼핑 정보망’이란 조회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환자가 과거에 의료용 마약류를 얼마나 처방받았는지 이력을 의료진이 들여다본 뒤 소위 ‘마약 중독자’를 구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권고에만 그친 탓에 의료업자 사용률이 1% 안팎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오남용 우려가 큰 펜타닐·식욕억제제 등 의료용 마약류부터 순차적으로 처방이력 확인을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의료용 마약류에는 환자를 진정시켜 수면을 돕는 프로포폴, 졸피뎀 등도 포함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료용 마약류부터 처방 시 환자의 투약이력을 의무 확인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대한의사협회와 상의를 거쳐 시행령에서 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정부가 환자의 치료보다는 마약 중독자 퇴치에만 집중해서 나온 법안”이라고 비판한다. 서울의 A마취통증클리닉 관계자는 “환자의 의료용 마약류 이력조회를 통해 여러 번 처방받은 내역이 분명히 있을 텐데 환자 상태와 상관없이 처방을 내리지 말라는 건지 묻고 싶다”며 “병원 돌면서 처방받는 마약중독 의심 환자의 경우 이미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의무화 도입 이전 처방 이력조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의 B의원 관계자는 “현재 시스템은 진료비청구 프로그램과 통합되지는 않은 탓에 환자를 조회할 때마다 사용자 인증을 거친 뒤 환자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며 “많은 의료진이 지금 이 시스템을 쓰지 않는 주요 이유로 한몫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현장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의 고충을 충실히 들어보고 식약처와 잘 조율해보겠다고 했다.
김영주 식약처 마약정책과장은 “모든 상황에서 의료진이 일일이 환자가 과거 의료용 마약류를 투입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에는 당연히 사회적 비용이 크다”며 “오남용 우려가 큰 의료용 마약류부터 처방 이력조회를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고통이 큰 말기 암 환자처럼 반드시 의료용 마약류 처방이 필요한 경우에는 이력조회를 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